진주를 명하다 – 미디어아트

Vol.06 2024 Autumn

진주를 명하다

미디어아트, 진주성에 착륙하다

천년고도 진주를 지킨 진주성과 의로운 사람들, 문화유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도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는 미디어아트가 우리의 걸음을 이끌었다.

빛을 따라 살아 있는 역사를 거니는,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

해가 저물며 진주성에 늘어놓았던 볕을 거둬들인다. 여름 햇볕의 온기가 남은 이곳에 미디어아트의 불빛이 찾아든다.

어스름이 남강에 쌓일 무렵, 진주성의 풍경을 즐기던 옛사람의 마음으로 공북문 앞에 섰다. 어느덧 석양이 석축에 내려앉아 빛나고, 성 위에 늘어선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고려 말에 축조된 진주성은 임진왜란 때 두 차례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 장소다. 지형적으로 적을 방어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경상우도의 군사를 총괄하는 우병영이 설치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남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유명인들이 찾아와 글과 그림을 남겼다. 언제나 방문해도 좋은 진주성은 이제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이 지친 마음을 쉬어 가는 근사한 탈출구가 되어 준다.

삶이 된 예술,
예술이 된 삶

시나브로 어두워지자, 진주성 곳곳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히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그 가치를 잊고 지내던 진주성에 미디어아트가 스며들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진흥원, 진주시가 공동주최하고 (재)진주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하는 ‘2024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이 개막하는 순간이었다.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지로 선정된 7개 도시 중에서 진주시가 첫 번째로 개최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합니다.
2024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 행사가 진주대첩이 가진 호국정신, 애국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조규일

진주시장

국가유산을 녹인
미디어아트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는 국가유산에 미디어·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감동적인 미디어아트를 구현하는 사업이다. 사업의 목표는 분명하다. 지역의 국가유산을
더 쉽게 알리고,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야간 콘텐츠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지역관광과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해마다 개최지를 바꾸어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는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공모를 통해 진주와 강릉, 고흥, 공주, 부여, 수원, 익산 등 7개 지방자치단체가
선정되었다. 진주성을 필두로 진주 곳곳에 응축된 국가유산이 지난 시간을 증명하니, 과연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개최지로 선정될 만하다.

불빛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8월 2일부터 25일까지,
진주성 안팎에서는 ‘온새미로 진주성도’라는 주제로
7개 미디어아트와 6개의 향유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진주성 안에서는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진주에 오길 잘했다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유서 깊은 절경이 빛났다.

김시민, 논개,
그리고 용기와 기개

미리 점찍어 둔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메인공연인 ‘빛의 성, 진주성’. 촉석문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숨을 고르기도 전에 눈이 바빠졌다.

왜군으로부터 진주성을 지켜 낸 김시민 장군과 진주 시민의 결의를 되살린 미디어아트 쇼 ‘칼을 품고 꽃을 피우다’가 시작되었다. 일본군의 공격에 진주성 벽이
불길에 휩싸였지만, 김시민 장군과 진주 시민들이 진주성 벽을 만지자 남강 물결을 타고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진주성 외벽으로 빛주머니가 모이고 진주성은
밝은 빛으로 다시 세워졌다. 이내 일본군이 돌진하자, 김시민 장군의 군대와 진주 시민들은 어둠을 가르는 용맹함으로 일본군을 섬멸해 성을 지켜 냈다.

칼을 품고
꽃을 피우다

– 진주성을 지킨 빛의 영웅들

진주성을 지킨 빛의 영웅들이 승리를 축하할 때 100명의 여성 무용수가 진주검무를 추는 광경이 아직도 눈가를 맴도는 듯하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는 음악 같았다. 진주성 벽 위에 칼사위가 지나간 자리에는 꽃이 피어났다.
겹겹이 피어나는 꽃잎은 매 순간 감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과거에서 현재로
나아가는 빛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공북문으로 향했다. 밤하늘에 놀던 별이 진주성에 내려앉은 것처럼 환하게 빛났다. 우물터를 지나니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숙호산의 호랑이와 사슴, 남강의 물고기가 인사를 건넸다. 이번엔 진주성을 방문한 이들의 소원이 담긴 빛주머니로 꾸민 소원나무를 만났다.
저마다의 소원이 모여 빛처럼 반짝였다.

텍스트 수정.
텍스트 수정.

김시민 장군상 뒤편 언덕에는 영남포정사 문루가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경상남도 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던 영남포정사의 정문으로,
화려한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남포정사 아래에 설치한 큰북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더해지니, 이 계절의 진주성이 더욱 생기 넘쳤다.
승리를 전하는 북소리에 영남포정사가 빛으로 깨어나고,
시원한 물줄기가 더위를 식혀 주었다.

텍스트 수정.
텍스트 수정.

좀 더 걸어 도착한 공북문은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는 사람들의 염원을 받으며 빛으로 화려하게 재건되고 있었다. ‘가르거나 쪼개지 아니한 생긴
그대로의 상태’를 뜻하는‘온새미로’라는 행사 주제처럼,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계승하는 진주성은 천년이 가도 굳건하다.

「2024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을 기획한 권재현 총감독(안양대 교수)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진주의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진주를 자주 방문함으로써 얻게 되는 영감이 있었죠.
특히 지역과 역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 싶을 때,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지역 예술인을 만나는 겁니다.
지역의 이야기들을 예술로 표현해 오셨던 분들이니까, 사실 가장 영감을 많이 갖고 계신 분들이거든요.
그분들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영감을 얻게 되죠.

– 권재현

총감독

이번 개막식에 100명의 진주검무 무용수가 출연했는데, 유영희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님이 함께하겠다고 해서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죠.
또 작은진주, 11명의 어린이가 빛주머니를 전해 주었고,
진주에서 20년 이상 연극계를 지켜 온 문화예술그룹 온터가 조선군과 일본군 역할을 해 주었어요.
진주의 사진작가 5명과 ‘진주성, 5개의 시선’이라는 사진과 미디어아트 협업 전시도 진행했죠.
촉석루 위에서 진주포구락무를 재해석해 미디어아트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진주포구락무 예능 보유자분들이 서울까지 직접 오셔서 촬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진주에 계신 예술인들에게 너무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 에너지를 원천으로 행사를 이끌어 온 거죠. 이런 좋은 유산을 가지고 있는 진주는 정말 행복한 곳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2024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

「2024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은 있는 그대로의 진주성을 소재로 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진주성에 얽힌 이야기를 화려한 ‘미디어파사드'와 ‘드론&레이저쇼'에 담아 진주의 문화유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진주성을 지켜 낸 정신적인 가치가 빛으로, 문화로 다시 살아났다.
미디어아트로 문화의 가치를 더하자, 역사적 공간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진주성 안 유물에 어린 희로애락은 관람객들을 빛으로 어루만졌다.
그리고 진주성을 찾은 이들이 얻게 된 희망의 빛을 오래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