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5 2024 Summer
진주를 명하다
모든 일은 마음이 하는 일, ‘대아고등학교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
학교와 지역, 배움과 정신을 잇는 행군이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수히 쌓인 걸음에는 시간, 역사,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모인 교사와 학생들
1968년 7월 23일,
진주시 대아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교사 3명과 학생 10명이 전교생과 학부모들의 환호를 받으며 힘찬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충무공 백의종군 추모 행군대’였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백의종군했던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을 본받기 위해 제1회 행군대 모집에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행군대의 목적지는 대전광역시.
하루에 40km를 걸어야 며칠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산청군에 도착한 행군대는 지품초등학교(현 산청초등학교)에서 여장을 풀고 밤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난중일기≫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녹록지 않은 대장정이었기에 기운을 북돋우는 메시지가 필요했습니다.
행군대의 맑은 눈길은 ≪난중일기≫ 속 고단한 역사를 환하게 어루만졌습니다.
함께 걷는 길에서 얻는 귀중한 경험
어느새 *안의광풍루 앞에 해가 떨어지자 붉은 낙조가 피어올랐습니다. 행군대의 걸음을 뜨겁게 기억해 달라는 당부가 하늘에 아로새겨지는 듯했습니다. 새벽이 되자, 해가 기울던 찰나에 감춰 둔 매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가 부딪치는 추위가 안의광풍루에 들이닥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불요불굴의 정신, 투지로 백의종군의 뜻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나누기 위해 걸음을 계속했습니다.
행군 거리를 채우지 못한 행군대는 셋째 날 야간 행군을 감행했습니다. 덕유산 줄기에 남아 있는 해발 734m 육십령 고개를 넘어가던 밤, 무장한 경찰이 이들을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건장한 남자 10여 명이 무리를 지어 육십령 고개를 넘으니 간첩으로 오인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통신 장비가 좋지 못해 학교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들은 결국 경찰서에 연행되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학교와 연락이 닿은 후에야 오해를 해소하고 행군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백의종군의 뜻과 그 의미를 나누기 위한
행군대의 걸음
제1회 행군대가 진주에서 대전까지 7일 동안 이동한 거리는 280km,
그들은 2년에 걸쳐 진주에서 아산시 현충사에 이르는
총 440km의 행군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대전에서 다시 진주로 돌아오는 행군대는 이전 출발 때와 달랐습니다.
뜨거움과 단단함이 걸음에 남았고,
고난 속에서 백의종군했던 이순신 장군처럼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마음을 얻었습니다.
제1회 충무공 백의종군 추모 행군대,
42년 세월의 행군 발자취
행군 발자취를 살펴보면 56년의 세월이 묻어 있는 행군 앨범을 볼 수 있다.
행군교사와 재학생들의 모습과 손으로 써내려간 그들의 역사적인 발자취를 볼 수 있다.
국혼(國魂)을 심는 교육
청소년 시절은 올바른 가치관 확립과 건전한 생활 태도를 길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알맞은 진로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이에 본교는 미래에 대한 설계와 올바른 인격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인교육과 나라 사랑, 국토 사랑의 국혼을 심어주는 충의교육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고자 매년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을 실시하고 있다.
충무공 백의종군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국토를 순례하여 조국애와 향토애를 불러일으키며 불요불굴의 정신과 강인한 투지를 기름으로써 확고한 국가관을 확립하여 국가 안보에 기여하며 사제간에 동행하는 사제동행 교육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1968~
2024
응답하라 1975 행군대
응답하라 1981 행군대
응답하라 1984 행군대
2024년 4월 26일, 초여름의 연한 잎사귀가 일렁이는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앞에 대아고등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동안 중단된 시기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빠짐없이 개최해, 올해로 55회째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아고등학교는 왜 55년째 행군을 이어오고 있는 걸까요?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은 선생님과 학생들, 그리고 동문들이 함께 걸으면서
친구 사랑, 학교 사랑, 그리고 내 고장 사랑까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교육 활동입니다.
2017년부터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진주성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바치신
7만 민관군의 호국정신도 새기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걸으며, 지키며, 느끼며
오늘 아침에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의 정신과 진주성에서 나라를 지킨 민관군의 호국정신.
둘째는 큰 도로를 건널 때 교통안전에 유의하라는 당부도 할 거고요.
셋째는 남강을 따라 걸을 때 진주시민 분들이 지켜볼 겁니다.
대아인의 품격에 맞게 질서 의식을 잘 보여주자고 당부해야지요.
정규석 교장이 학생들의 걸음을 다독였습니다.
제55회 충무공 이순신 탄신 기념 행군
이동 경로 자세히 보기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 동방호텔 – 진양호 – 문화예술회관 – 진주교 – 천수교 – 평거동 둔치 야외무대 – 어린이 교통 공원
– 충혼탑 – 진양호 공원 가족 쉼터 – 꿈 키움 동산 – 서진주 나들목 공영주차장 – 숙호산 – 대아고
742명의 학생들은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이 품은 이름들과 사연을 생각하며 잠시 묵념합니다.
남명 조식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이 경(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이 의(義)다.
제자들과 함께 평생 경(敬)과 의(義)를 실천했던 남명 조식 선생의 정신을 좇아 70여 명의 교사들이 출발점에 섰습니다.
대아인들의
힘찬 발걸음
선배들이 준비한 시원한 생수를 받으며 행군을 시작합니다. 뒤따라 들리는 힘찬 파이팅 소리에 다리에 힘이 저절로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서 1학년 때보다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요.” 2학년 김민성 학생이 밝게 웃으며 행군을 이끌었습니다.
남강변을 걸어가는 중에 또 한 번 진주성을 마주했습니다.
오래전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웠던 민관군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진주의 계절이 더욱 푸르게 다가왔습니다.
천수교가 보일 때 즈음,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음을 돌렸습니다.
1학년 3반 담임을 맡고 있는데요. 1학년이라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학생들이 질서를 잘 지키고 열심히 걸어서 깜짝 놀랐어요. 저만 잘하면 될 것 같아요. (웃음)
올해 부임한 강진주 교사는 든든한 학생들의 모습에 금세 더위를 잊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좀 더 특별하게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을 하는 법
대아고등학교 봉사 동아리 ‘인터렉트’는 한층 알찬 기획으로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인터렉트에서 차장을 맡고 있는 이창현이라고 합니다. 행군을 하는 도중에 쓰레기 생길 수 있잖아요? 진주에 민폐가 안 되게끔 행군 맨 마지막 순번에 서서 쓰레기를 열심히 줍고 있어요.”
남강변에 보이는 쓰레기들까지 줍다 보니 쓰레기봉투는 이미 세 개째. “남을 도울 때 느끼는 행복이 가장 크거든요. 이런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이 큽니다. 굉장히 뿌듯하고요.” 행군에다 쓰레기까지 줍다 보니 어느새 인터렉트 회원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을 위한 새 길을 잇는 것은 이들의 행군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모두 함께 성장하는 걸음
숨을 고르고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아름다운 진주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행군의 걸음을 재촉하는 순간에도 학생들의 안전을 차례차례 살피는 교사들의 움직임은 분주했습니다. “학생들의 안전에 가장 많이 신경을 씁니다. 안전을 위해 행군 전에 사전 점검을 하고 많은 주의를 기울입니다. 제가 이 학교에서 근무한 지 20년 남짓 되었는데 이전부터 이어진 행사잖아요. 제가 진행하는 동안 책임을 갖고 임해야지요.” 김재만 교사는 책임감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 정도의 고생은 충분히 감수할 만큼 큰 보람을 얻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온몸이 열기로 가득차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드디어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신선한 바람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말려줍니다.
걸음걸음에 깃든 진심,
모든 것은 마음이 하는 일
대아고등학교 학생회장 서수헌 Interview
선두에서 부지런히 걷던 대아고등학교 학생회장 서수헌 학생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자,
빙글 웃으며 운을 뗐습니다.
18km 정도의 거리라서, 처음에는 힘들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게다가 학생들은 평소에 앉아서 공부만 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친구들과 함께 걸어보니, 그 거리가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가방 들어주기 장난도 치고요,
대화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어요.
서수헌 학생은 교실에만 있느라 보지 못했던 진주의 아름다운 곳까지 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3년 동안 행군을 하면서 진주에 이런 곳이 있었나?
가족과 함께 오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았던 곳들이 있었어요.
졸업한 후에도 행군의 추억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우리 학교 학생들만의 추억이잖아요.
물론 우리 지역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 없는
대아인의 걸음들
시야를 멀리, 푸른 하늘로 옮깁니다. 55년 동안 교육 환경은 변화를 거쳤지만, 진주를 걷는 행군의 걸음들과 백의종군의 정신을 기리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아고등학교 졸업생이자 교사로서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에 매년 참가 중인 이영조 교사는 말합니다.
이 행군은 대아인들에게는 존재의 이유입니다.
진주시민들에게는 한 학교의 행사가 아니라 국가와 지역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자랑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행군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학생들은 언젠가 꺼내어 볼 이 장면을 마음속에 차근차근 정리합니다.
걸음걸음마다 진주의 온기가 담긴 행군의 기억이 분명 포근하게 위로를 건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