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를 탐하다 – 부자의 기운을 찾아서 한 걸음, 지수승산부자마을

Vol.05 2024 Summer

진주를 탐하다

부자의 기운 속으로, 지수승산부자마을

기업가 정신의 성지로 이름난 승산마을. 최정희 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대한민국 창업주 33명을 배출한 마을 구석구석에 스민 부자의 기운을 만났다.

나뭇가지에 하나둘씩 돋아난 잎들이 지상의 태반을 초록으로 물들인다. 눈부신 햇살에도 흐트러짐 없이 초록을 담뿍 머금은 소나무를 보고 우리는 ‘푸르다’라고 한다. 푸른 것은 자연에만 있지 않다. 청렴한 태도로 옳은 것을 실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향했던 나눔과 베풂의 정신도 푸르다.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 600년 전통의 부자 마을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진양 강씨 가문의 딸과 결혼한 김해 허씨는 승산마을에 터를 잡았다. 이후 능성 구씨를 사위로 맞으면서 300년 넘게 가족으로, 이웃으로 함께 살아왔다. 구한말에는 만석꾼이 2가구, 천석꾼이 14가구에 이를 정도로 당대 최고의 부자가 살았다.
한양의 명문 세도가들 사이에서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곳은 한때 경상우도의 중심지인 진주보다 관심을 받는 곳이었다.

인재가 나는 곳, 부자를 내는 명당 마을

진주의 동쪽으로 향하다 보면 나쁜 기운과 왜구로부터 마을을 지켰다는 방어산을 만난다.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명당자리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방어산의 품 안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형국인 승산마을. 풍수지리가는 승산마을을 바라보는 관념이 달랐다. 황금 닭이 둥지를 틀어 알을 품는 ‘금계포란(金鷄抱卵)형’ 으로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라 많은 인재가 나올 명당으로 보았다.
승산마을의 또 다른 특징은 물과 인연이 깊다는 것이다. 승산 들녘을 풍요롭게 만든 지수천과 실개천은 여전히 승산마을 옆을 흐른다. 풍수지리에서 ‘재물’ 을 의미하는 물길이 마을을 지나는 셈이다. 반면, 물이 흘러 나가는 수구가 좁아 부의 기운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반면 유출은 적어 부자가 많다고 전해진다.

승산마을의 내력을 증언하는 곳

승산마을에는 K-기업가정신센터로 모습을 바꾼 지수초등학교가 있다.
서당이 아닌 신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역 유지들의 뜻이 합쳐지면서 1921년 지수공립보통학교가 개교했다.
승산마을의 허복 선생은 학교용지를 무상으로 기부했다.
LG, GS, LIG 등 우리나라 100대 기업 창업주 30여 명이 졸업한 지수공립보통학교는 이 땅의 내력을 증언하는 생생한 사료다.
부자의 기운을 좇아 진주에 왔더라도 K-기업가정신센터를 꼭 방문해야 하는 이유다.

승산마을 도보 해설 투어를 이용하면 지수 승산마을의 명소를 들러볼 수 있다.

지수 승산마을 관광 안내소 055-762-7449

승산마을 600년을 집약한 고효율의 선택지,
승산마을 도보해설투어

‘승산마을 도보해설투어’는 승산마을의 600년 세월을 1시간 30분으로 집약한 고효율의 선택지다. 지수 승산마을 관광 안내소 앞에서 투어를 안내할 최정희 문화관광해설사와 만났다. K-기업가정신센터 앞에 선 아름드리 부자 소나무가 코스의 시작점. 경남도 보호수로 지정된 이 소나무는 대한민국 창업주들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기억해야 할 기업가 정신

지수공립보통학교가 생겼을 당시 선생님이 학생들과 산에서 좋은 나무를 가져와 학교로 옮겨 심은 모양입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 효성 창업주 조홍제 회장은 어린 소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는데,
지금은 한 그루만 남아 부자 소나무로 부르고 있습니다.

승산마을의 이야기

다음 목적지 ‘지신고가’로 향하는 길, 최 해설사와 함께하니 걸음마다 볼거리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대구나 명태를 100장씩 사들인대요. 담장에 생선을 안팎으로 걸어서 말리는데 담장 안쪽 생선은 주인이, 담장 바깥쪽 생선은 소작농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먹도록 배려했던 거지요. 그런데 담장 안쪽 생선은 단 한 마리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냥 걷기만 해서는 모르고 지나쳤을 이야기가 쏟아진다.
1) 경주에 최부잣집으로 불리는 ‘최씨 고택’이 있다면, 진주에는 근검절약으로 만석꾼이 된 지신정 허준의 생가 ‘지신고가’가 있다.
2) 경주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최부잣집이 있다면, 진주에는 나라와 이웃이 어려울 때 나눔과 베품을 보여준 허씨 가문이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승산마을에 단단하게 뿌리박힌 부자 정신으로 이동했고 걸음은 어느새 ‘지신고가’에 멈춰 섰다. K-기업가 정신이 탄생한 데에는 지신정 허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K-기업가 정신 탄생 배경에 빼놓을 수없는 ‘지신정 허준의 이야기’

당대 만석꾼이었던 허준(1844~1932) 선생은 그 재산을 잘 지켜 LG와 GS 창업의 밑거름이 되었다.

허준 선생은 옷이 남루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덕암마을에 있는 논에 가기 위해 대문을 나서면 신발을 품에 안고 맨발로 걸었고
저잣거리에서 부채를 사면 부챗살이 부러질까 봐 머리를 흔들 정도로 물건을 아꼈습니다.

일곱 딸에게 20마지기씩 총 140마지기를, 조상의 묘지기 자본으로 140마지기 외에
70마지기는 8촌 이내 빈곤한 친척에게 주고, 120마지기는 문중의 의장자금으로 한다.
500마지기는 일신학당(현 진주여고)에 의연금으로 내고 7,000원은 궁핍한 자를 돕는 의연금으로 내놓는다.

(동아일보 1920년 4월 13일 기사)
총재산을 공익에 바친 허준

허준 선생과 그의 아들 허만정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지원하고 일신여고(현 진주여고)를 설립했다.
구인회 회장 또한 젊어서부터 상해 독립 자금을 전달하는 일을 도맡았으며 교육에 많은 재산을 투자했다.

승산마을 작은 금강산

또 다른 만석꾼인 허만진 선생은 보릿고개 때에 방어산에 있는 돌을 집 앞마당에 가져다 놓으면 곡식을 지급했다. 곡식을 구해가는 사람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쌀을 가져가도록 해서 어려운 사람들의 체면을 다치지 않게 하였다. 그렇게 쌓인 돌들이 금강산을 닮아 ‘승산마을 작은 금강산’으로 불렀다 한다.

세상을 비추던 기업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깊은 속을 들여다보는 길. 최 해설사의 입담에 귀를 세운다. “K-기업가 정신은 배려와 포옹이라고 생각해요. 승산마을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존중, 배려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어요. 승산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구인회 회장도 어떻게 베풀고 배려하는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훈이 이렇게 좋으니까 자식 교육을 그만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부자들이 지킨 것을 보고 느끼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는 길 저편에선 고택이 환하게 빛난다. 수백 년 동안 마을이 간직해 왔을 정취에 걸음이 순해졌다. 연고는 없을지라도 마을에 찾아온 자신을 주민 모두가 환대하고 반겨주었다는 최정희 문화관광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담장이 떼어 둔 그림자 앞에 섰다. 순한 걸음들이 토닥이며 걸었을 골목 모퉁이를 돌다 보면, 한복을 차려입은 이들을 만날 것만 같은 풍경이 흥취를 돋운다. 조선 시대로 여행을 온 듯 고택 앞에서 ‘이리 오너라’를 외치고 싶어지고 담장 너머 핀 꽃을 보면 시라도 읊고 싶어 머릿속을 뒤적인다.

승산에 부자 한옥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재미도 있다.

ㆍ대문 앞에 있는 우물
ㆍ행정고등고시 최종 합격 증서(인재가 나는 명당)
ㆍ위풍당당한 건물채에 비해 낮게 만든 굴뚝

승산에 부자 한옥
남기고 싶은 이야기

첫 번째는 대문 앞에 있는 우물이다. 승산마을의 부자들은 우물 명당을 일꾼들에게 내주었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온 일꾼들이 물을 불편하지 않게 마음껏 길어 가도록 우물을 대문과 가까이 두어 배려한 것이다.
두 번째는 행정고등고시 최종 합격 증서로, 인재가 나는 명당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돌 틈에 자란 잡풀까지 직접 뽑고 관리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허문행 관리자는 합격 증서를 직접 걸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 대가들이 이곳에 와서 공통적으로 가리킨 좋은 터가 있습니다. 바로 안채 청실입니다. 실제 이 집에 사셨던 분들도 벼슬을 하셨지요. 서울에서 내려온 신혼부부가 일주일 동안 묵고 갔는데 임신이 되었다는 좋은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서 신혼부부들이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위풍당당한 건물채에 비해 낮게 만든 굴뚝이다. “안채의 마루 밑에 굴뚝 구멍을 낸 이유가 뭘까요? 밥 짓는 연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겁니다. 끼니를 거르는 이웃들의 마음을 배려한 거지요.” 승산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의 설명에서 남다른 애향심을 엿본다.

자식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을 만나러 가는 길
효주원

어느덧 효주원에 다다른다. 고향을 사랑한 허만정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공원이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쉬어 갈 수 있는 공원을 만들면 좋겠다는 어머니 하위정 여사의 뜻에 따라 자녀들이 조성하여 마을에 기부했다. 부모에 대한 애틋한 효심과 유년 시절 함께 뛰놀며 배운 마을 공동체,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누려는 베풂의 정신이 아로새겨진 곳이다.

자녀들은 공원을 조성한 후 기념수를 찾다가, 집마다 한 그루씩 있어 배고픔을 달래 주던 듬직한 감나무를 선택했다. “허만정 선생께서 돌아가실 때 ‘나를 위해서는 한 평도 헛되이 쓰지 마라’는 유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자를 가지고 와서 이 감나무를 재어 봤는데 한 평이 안 됩니다. 새 가지가 나면 다른 가지가 스스로 죽어 버렸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를 위해서는 땅 한 평도 헛되이 쓰지 말라는 선대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이 감나무는 한 평 이상 자라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정희 문화관광해설사가 설명을 덧붙였다.

효주원의 가장자리와 맞닿은 아홉 개의 돌 앞에 섰다.

어디를 둘러봐도 이 공원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비석이 없지요?

최 문화관광해설사가 말을 건넸다.

효주원에서 가장 한적하고 낮은 곳에 9개의 돌이 있습니다. 이 공원을 만든 사람들이에요.
가운데 돌은 허만정 선생님, 나머지 돌은 8명의 아들을 상징합니다. 허승효 회장이 가족들만 아는 기호로 남들을 모르게 설치하고 싶다고 했나 봐요.
얘기를 들은 직원이 1m가 넘는 돌기둥으로 만들었는데, 허승효 회장이 아니라며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닐 수 있게요.

햇살이 석축에 내려앉아 빛났고, 정감 가는 공원의 신록이 초록으로 무성했다.

작은 이윤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을 키우고 시대를 이끌던 기업가들의 흔적을 좇아 승산마을로 떠난 여행.
자박자박 마을을 걷는 동안, 부자의 기운을 채우며 기업가 정신으로 이룬 역사 속을 거닐었다.
걸음이 닿는 곳마다 그들의 푸른 기상이 밀려왔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다시 승산에 한옥 마을로 시선을 옮기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한옥 체험을 하러 온 여행객들과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운다. 몸과 마음에 좋은 기운이 가득했다.

승산마을의 사람들은 600년 전부터 베풂과 나눔을 실천해 왔다. 어떠한 고난을 마주하더라도 마음을 나누며 함께 이겨냈다.
승산마을이 있는 지수면(智水面)은 지혜로운 물을 뜻한다.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승산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은 지혜롭게 재물을 활용하여 가치를 창출해 낸 선각자였다.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르는 곧은 마음과 겸손한 태도, 그리고 배려하는 자세로
시간이 흘러도 스스로 들여다보고 보살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붉은 해는 사라지지만, 방어산 위로 내일의 샛별은 뜰 것이다.

승산에 부자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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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스테이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길45번길 16

문의

055-762-8595

지수승산부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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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역사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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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지수로 506​

부자의 기(氣) #문유사부경(文ㆍ儒ㆍ史ㆍ富ㆍ經)

지수남명진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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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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