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를 맛보다 – 진주에서 살아난 토종 씨앗, 앉은키밀

Vol.05 2024 Summer

진주를 맛보다

진주에서 살아난 토종 씨앗 ‘앉은키밀’

진주에서 살아난 ‘앉은키밀’이 진실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살기 위해 버틴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앉은키밀로 만든 진주진맥

조상들이 즐긴 토종 씨앗이 맥주가 될 줄 알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공간 ‘진주진맥 브루어리’로 간다.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진주 논개시장에 들어선 진주진맥 브루어리에 불이 켜지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앉은키밀로 만든 진주진맥을 권하는 청년들이 디제잉 파티를 열어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깨우고 LP 듣기, 다트 게임을 비롯해 맥주 양조체험 교실이 몇 시간이고 훌쩍 보내게 한다. 진주진맥 한잔에 빠져드는 시간이다.

진주진맥의 풍미를 높이는 비결
‘앉은키밀’

진주진맥의 풍미를 높이는 비결은 단연 토종 씨앗 ‘앉은키밀’이다. 오래전 우리 식탁에서 사라져버린 앉은키밀을 진주에서만큼은 정성껏 심고, 기르고, 수확한 것을 먹어온 덕분에 진주진맥이 탄생했다. “진주진맥은 오직 진주에서만 맛볼 수 있으니까 특별하죠. 청량하고 시원한 라거와 과일향과 꽃향기가 나는 에일, 두 가지를 판매하고 있어요. 글루텐 함유량이 많아 속이 더부룩하지 않은 게 특징이에요. 꿀꺽꿀꺽 넘어갑니다. 최고라니까요!” 진주진맥 브루어리 황우성 매니저의 설명이 여행자의 흥을 돋운다.

때 이른 더위가 이어지던 5월, 앉은키밀 밭의 그 싱싱한 풍경을 직접 보고 싶어
진주시 금곡면을 향해 부지런히 달렸다.

토종 씨앗의 변치 않는 힘

키가 50~80cm까지밖에 자라지 않아 이름 붙여진 ‘앉은키밀’. 생장 기간이 짧아 이모작이 가능했기에 보릿고개를 넘기던 이들과 함께하며 굶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토종 씨앗의 변치 않는 힘이었다. 진주시 금곡면에서 4대에 걸쳐 앉은키밀의 종자를 보존해 온 금곡정미소 백관실 대표는 앉은키밀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앉은키밀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토종 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후에 잘 적응되어 있어서 병충해에 강합니다. 또 앉은키밀은 밀알 껍질이 연해서 97%까지 통째로 갈아내기 때문에 밀가루 제분율이 높습니다. 특유의 향이 좋아서 밀가루 반죽에 첨가물을 넣지 않는 수제비, 칼국수, 전 등을 만들 때 맛이 최고로 좋습니다. 그리고 글루텐 함량이 적어서 빵을 만들면 부피가 작지만, 단맛이 많이 나고 소화가 잘됩니다. 아토피 걱정도 없고 건강을 해칠 걱정이 없어요. 발효가 훨씬 잘돼서 누룩이나 고추장에도 앉은키밀을 넣는데 그 어떤 밀보다 고소한 맛이 납니다.

그는 앉은키밀의 장점을 공감한 것이 종자를 지켜 낸 기반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 공감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농사를 계속 지으면서 앉은키밀의 가치를 깨닫게 됐습니다. 언젠가 다른 밀 농가들이 붉은곰팡이병에 해를 입어 생난리가 났는데 앉은키밀은 멀쩡한 거예요. 병충해에 강하니까, 농사짓기에 아주 수월했어요. 그리고 다른 장점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앉은키밀을 꼭 심고 가꾸어 성공하겠다.’라는 결심으로 농사를 지속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개량종 경질밀인 금강밀과 조경밀이 확산했을 때조차 앉은키밀은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금강밀과 조경밀의 종자를 얻어 농사를 지은 농사꾼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밀이 제대로 자라지 않았고 병충해도 많았거든요.

맛의 방주에 등재된 앉은키밀

1980년대 수입 밀에 밀려 관심을 빼앗기기도 했고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앉은키밀은 시대 흐름에 맞춰 꾸준히 자기 계발도 했다. 2013년 국제 슬로푸드 생명다양성재단 ‘맛의 방주’에 등재된 이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백 대표는 이때가 가장 영광스럽고 큰 보람을 느꼈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국제 슬로푸드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우리나라의 토종 종자 다섯 가지를 ‘맛의 방주’ 목록에 넣었는데, 여기에 앉은키밀이 이름을 올렸어요. 우리나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자리에 동참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씨앗에게도 버텨야 하는 순간이 있다

앉은키밀의 명맥이 차곡차곡 쌓이자 찾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기고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생겼다. 대전 ‘성심당’을 비롯해 구례 ‘목월빵집’, 전국 3대 누룩 회사 중 하나인 ‘진주곡자’ 등에서 앉은키밀의 오랜 단골이다. 백 대표는 밀 수매가 중단되었을 때부터 앉은키밀을 계속 찾아준 소비자가 있었기 때문에 앉은키밀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서 공장도 짓고 기계 설비도 새것으로 바꿨어요.
제가 이렇게 야무진 걸 갖고 있어서 그 덕을 봤습니다.
참 감사하지요.

앉은키밀을 제분해 백밀가루, 통밀가루, 누룩, 국수 등을 생산하는 금곡정미소는 사천과 진주에서 앉은키밀로 만든 칼국수, 들깨칼국수, 국수, 비빔국수 등을 판매하는 가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고 했던가. 자연이나 사람이나 살아가는 과정에는 버텨야 하는 순간이 있는 듯하다. 위기를 견딘 토종 씨앗이니까, 위기를 뛰어넘는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앉은키밀에서 우리 삶을 엿보았다.

금곡정미소,
시대를 거슬러 토종을 지키다

1916년 문을 연 금곡정미소는 멸종 위기의 앉은키밀 종자를 지켜낸 유일한 곳이 되었다.

1대 창업주인 우리 할아버지 고(古) 백용안옹께서 일제 강점기 때부터 경상남도 고성에서 정미소를 시작했습니다. 해방이 된 이후에 2대이신 부친(고(古) 백정유)께서 일을 이어받아서 하시면서 진주시 금곡면에 새로 터를 잡았지요. 저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1966년도에 바로 정미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100여년 전부터 사용해 온 방식 그대로
재래식 금속 맷돌 제분을 하고 있습니다.

설비는 현대화했으나 옛 방식 그대로 생산해내는 모습이 감동을 안긴다. 명맥이 끊길지도 모르는 토종 밀을 수호하는 길. 잊히기 쉬운 것들을 보존하는 일. 백 대표는 그것을 목표이자 책무로 삼아왔다.

좋은 것, 귀한 것이 나에게 있다면 어떻게 할까. 아껴서 간직하고 소중하게 보물처럼 대할 것이다. 앉은키밀도 마찬가지였다. 1963년 계묘년, 보리 흉년으로 보리 종자가 다 썩었을 때 백 대표의 어머니는 앉은키밀을 베어 낱알을 털어내고 온돌방에 군불을 때어가며 앉은키밀 종자를 지켰다.

‘토종의 대부’라 불리는 한국생물다양성위원회 위원장 안완식 박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안 박사님이 찾아오신 이후 학계와 언론에서 앉은키밀을 주목하기 시작했거든요. 이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앉은키밀 종자를 무료로 나누어준다며 홍보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종자를 받아갔고, 앉은키밀을 생산하는 농가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그 덕분에 앉은키밀이 고성군, 함안군, 사천시, 남해군 등지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앉은키밀과 함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앉은키밀에게 어려운 시기를 버틴다는 것은 어떤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을 기꺼이 감수한 끝에 앉은키밀은 진주진맥을 넘어 문화를 품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금곡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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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토종앉은키밀 영농조합법인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월아산로 73-9​

문의

055-752-1156

토종밀달인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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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들깨칼국수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월아산로 145-21​

문의

055-752-1156

진주진맥브루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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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호프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진양호로569번길 10​

문의

0507-1410-1466